5,126번 망해보고 깨달았다, 실패는 '데이터'일 뿐이다 제임스 다이슨의 '먼지 철학'
혹시 병원에서 X레이를 찍어보신 적이 있나요? 뼈가 부러졌는지, 몸속에 문제가 없는지 훤히 들여다보는 이 기술은 한 여성 과학자의 목숨을 건 연구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노벨상을 한 번 타기도 힘든데, 서로 다른 분야(물리학, 화학)에서 두 번이나 수상한 인류 역사상 유일한 인물. 연구를 위해 자신의 몸이 방사능에 피폭되는 줄도 모르고 실험실을 지켰던 마리 퀴리의 위대한 희생과 사랑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마리 퀴리는 1867년 폴란드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폴란드는 나라를 잃은 상태였고, 여자는 대학에 갈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배움에 대한 열망이 컸던 그녀는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납니다.
난방도 안 되는 다락방에서 추위에 떨며 공부했고, 배가 고파서 기절하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훗날 "그 시절이 내 인생에서 가장 외로웠지만, 가장 자유롭고 행복했다"고 회상했습니다. 오직 공부에만 미쳐있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가장 큰 업적은 라듐과 폴로늄이라는 새로운 원소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녀는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 낡은 창고에서 수 톤이나 되는 광석을 끓이고 저으며 라듐을 추출해 냈습니다. 어두운 실험실에서 스스로 푸른 빛을 내는 라듐을 보며 그녀는 "마치 요정의 빛 같다"며 아름다워했습니다.
하지만 그 빛은 치명적인 방사능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방사능의 위험성이 알려지지 않아, 그녀는 라듐 병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거나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잠들기도 했습니다.
마리 퀴리는 당시 남성 중심이었던 과학계에서 온갖 차별을 받았습니다. "여자가 무슨 과학을 하느냐"는 비아냥은 일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 법입니다. 당대 최고의 과학자였던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그녀를 깊이 존경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유명한 사람 중에 명예 때문에 타락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 바로 마리 퀴리다"라고 극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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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그녀의 몸은 서서히 무너져갔습니다. 평생 방사능에 노출된 탓에 손가락 끝은 갈라졌고, 백내장으로 앞이 잘 보이지 않았으며, 결국 재생불량성 빈혈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가 남긴 연구 노트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방사능을 내뿜고 있어서, 보호 장비 없이 만질 수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으며 인류에게 암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입니다.
마리 퀴리는 라듐 추출법에 대한 특허를 내면 억만장자가 될 수 있었음에도, "과학적 발견은 인류의 것"이라며 기술을 무상으로 공개했습니다.
그녀의 숭고한 희생정신 덕분에 오늘날 수많은 암 환자들이 방사선 치료를 통해 생명을 구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바꾼 과학자들은 모두 자신만의 고독한 싸움을 해왔습니다. 암흑 속에서 라듐을 찾은 마리 퀴리처럼,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 또한 고독한 사색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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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우리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준 위인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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