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26번 망해보고 깨달았다, 실패는 '데이터'일 뿐이다 제임스 다이슨의 '먼지 철학'
우리는 흔히 나이팅게일 하면 어두운 병실을 등불로 비추며 환자를 돌보는 백의의 천사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그녀가 사실은 천재적인 수학자이자 통계학자였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그녀는 단순히 친절한 간호사가 아니었습니다. 엉망이었던 병원 시스템을 데이터와 표로 분석해 사망률을 기적적으로 낮춘 냉철한 행정가였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잘 몰랐던 나이팅게일의 진짜 모습을 소개합니다.
1820년 영국, 나이팅게일은 엄청난 부자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상류층 여성은 좋은 남자를 만나 파티나 즐기며 사는 것이 당연한 삶이었습니다. 심지어 당시 간호사는 병원 청소부 취급을 받는 천한 직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부모님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간호사가 되겠다고 선언합니다. 신의 부름을 받았다고 느낀 그녀에게 편안한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크림 전쟁이 터지자 그녀는 전쟁터의 야전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그곳의 상황은 지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병사들은 총에 맞아 죽는 것이 아니라, 더러운 위생 상태 때문에 감염되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밤마다 등불을 들고 환자들을 살폈고, 사비를 털어 청소 도구를 사서 병원을 쓸고 닦았습니다. 그 결과 42%에 달하던 환자 사망률은 6개월 만에 2%로 뚝 떨어졌습니다.
나이팅게일이 활동하던 시기에는 아직 세균을 죽이는 항생제가 없었습니다. 알렉산더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하기 전이었으니까요.
("항생제의 아버지, 알렉산더 플레밍 이야기 더 보기")
약을 쓸 수 없었던 그녀가 선택한 무기는 바로 철저한 위생과 환기였습니다. 그녀가 닦은 것은 병원의 바닥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길이었던 셈입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녀는 더 놀라운 업적을 남깁니다. 그녀는 병원의 사망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장미 도표라는 획기적인 그래프를 직접 고안해냈습니다.
글자만 가득한 보고서 대신 한눈에 들어오는 그래프를 들고 영국 의회와 여왕을 설득했고, 결국 병원 시스템 전체를 뜯어고쳤습니다. 그녀는 감성이 아닌, 이성과 숫자로 사람을 설득한 최초의 여성 통계학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자신의 연구를 위해 수학과 과학을 무기로 삼았다는 점에서, 방사능 연구에 몰두했던 마리 퀴리와도 닮아 있습니다.
("데이터로 싸운 또 다른 여성 과학자, 마리 퀴리 이야기 더 보기")
나이팅게일은 90세까지 장수하며 평생을 병원 개혁에 바쳤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사란 아름다운 꽃을 뿌리는 사람이 아니다. 고통받는 자를 위해 기꺼이 더러운 곳으로 들어가는 사람이다."
단순한 봉사를 넘어,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으로 세상을 바꾼 그녀의 열정. 오늘날 현대식 병원의 시스템은 모두 그녀의 손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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